
뷰티 에디터로 오랫동안 일해오셨습니다. 일로 만나는 향과 사적으로 만나는 향, 그 둘이 에디터님에게 어떻게 다른가요.
일로 향수를 만날 때는 아무래도 향수 자체로만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해요. 쓸데 없는 직업병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로 향수를 마주하면, 이 제품이 향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어떤 조향사의 ‘코’와 직관을 거쳐서 어떤 노트를 통해 그 이야기가 승화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어떤 이미지와 언어로 번역되었는지, 그래서 소비자에게 의도대로 잘 전달이 되고 있을지까지 보게 되거든요. 흡사 ‘현미경의 시선’과 ‘망원경의 시선’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제품에 담긴 여러 가지 면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보게 되는 거죠. 향수는 스킨케어처럼 기능이 명확하지 않고, 메이크업처럼 비포-애프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에 감각을 어떻게 시각화하고, 어떤 세계관을 만들어주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랜드의 역사나 아카이브, 이를 해석하는 조향사의 의도, 향을 구성하는 원료뿐 아니라 그 향이 어떤 인물이나 장면, 시대와 연결되는지를 보는 편이에요. 향수를 주제로 화보를 기획할 때도 비슷합니다. 제품을 예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이 제품이 이 장면에 있어야 하는지, 이 이미지가 이 향을 어떻게 확장시켜 오디언스들에게 전달될지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반대로 사적으로 향을 만날 때는 훨씬 단순해져요. 향을 맡은 뒤 ‘아, 좋다!’ 이 한 마디로 끝. 결국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좋게 느껴지는가, 내가 지금 이 향에 끌리는가, 현재의 내 모습과 내가 추구하는 모습을 얼마나 이 향에 잘 투사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일할 때는 향수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보고, 사적으로는 그 이야기가 내 몸과 기억에 어떻게 남는지/남을지를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 에디터로서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향수 산업의 흐름이 있다면요. 트렌드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눈이 가는 변화나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K퍼퓸이 대세로 떠올랐다거나, 국내 향수 브랜드들의 양분되는 미감(멀멀하거나, 파격적이거나),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K-dupe 향수(소위 딥티크st, 르라보st 등 각종 ‘st’ 향수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 혹은 구르망 계열과 머스크 계열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행이 왔다갔다 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나온 얘기일 거라 저까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고 좀더 건설적인 흐름에 대해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문득 드는 생각은 향이 개인적인 공간을 넘어 점점 더 공적인 공간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예전에는 향수라고 하면 주로 내 몸에 뿌리는 것, 혹은 집이나 호텔 방처럼 개인적인 공간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을 먼저 떠올렸다면, 이제는 향 자체가 하나의 공간 경험이나 예술적 경험을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외국의 사례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프란시스 커정의 작업을 들 수 있어요. 그는 오래전부터 향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적 ‘매개체’로 다뤄왔어요. 2007년과 2008년에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수천 개의 향기나는 비눗방울을 띄우는 종합예술 ‘PréamBulle(프레암뷸르)’를 선보인 적 있어요. 루이 14세가 좋아했던 과일에 대한 오마주로 딸기, 배, 메론 등의 향이 나는 비눗방울로 정원을 가득 채운 거죠. 2010년에는 그랑 팔레에서 ‘NoctamBulle(녹탕뷸르)’라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는데, 거대한 그랑 팔레라는 공간과 향을 담은 비눗방울, 음악까지 결합해 시각예술의 경지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들이 너무나 흥미롭게 느껴져요. 향이 ‘무언가를 향기롭게 만드는 소재’에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이자 ‘예술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확장될 수 있음의 방증이니까요.
물론 아직 이런 규모의 작업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향에 대한 인식이 개인의 취향이나 퍼스널 공간을 넘어 ‘공간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유영국 화백의 전시에서는 그의 손자가 이끄는 브랜드 쿠오카(kuoca)에서 새로 출시한 마운틴 위드인(Mountain Within)이라는 향을 맡을 수 있어요. 이런 사례들을 보면 향이 이제 전시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공간의 분위기와 기억을 만드는 하나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아직 시작하는 단계일 테지만요.
작년 파리에서 프란시스 커정의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뒤에 더욱 이런 궁금증이 커졌어요. 앞으로 향이 패션이나 디자인, 건축, 미술 같은 다른 영역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될 지.
향수가 향이 아닌 다른 것(광고, 이미지 등)으로 더 기억에 남았던 사례도 있을까요?
핀터레스트에서 과거의 향수 광고들을 디깅하는 게 취미 중 하나에요. 자극도 많이 받고 영감을 얻게 되거든요. 최근의 향수 광고 비주얼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요.
딱 이 질문에 맞는 케이스가 있어요. 샤넬(CHANEL)의 안테우스(Antaeus)라는 향수의 1980년대 광고 비주얼인데, 사실 현재는 브랜드에서 그리 푸쉬하는 제품은 아닌 것 같아요. 붉은 천으로 하체만 가린 거의 나신에 가까운 다부진 근육질의 남성이 엄청나게 큰 향수 보틀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씬이에요. 에디터를 20년 가까이 하면서 샤넬 브랜드와 이런저런 콘텐츠 작업을 많이 한 저에게도 생소한 향수였고, 전 이 이미지만 봤을 뿐 안테우스 향을 맡아본 적 조차 없어요. 그런데 이 향수가 너무 기억에 남아있답니다.
‘안테우스’라는 이름은 물론 비주얼 자체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안테우스는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인데 굉장히 흥미로운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 격인 ‘대지’와 몸이 닿아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땅에 닿아 있는 한 사실상 무적이었어요. 헤라클레스가 그와 싸웠을 때 처음에는 땅에 내던져도 계속 힘을 되찾는 안테우스를 이길 수 없었지만 안테우스의 힘의 원천을 알아차리고 안테우스를 땅에서 들어 올려, 더 이상 대지와 접촉할 수 없게 만든 채 제압합니다.
저는 이 비주얼을 보면서 이 신화를 다시 한번 찾아 보게 되었고, 헤라클레스와 안테우스의 이야기를 이토록 직관적이고 임팩트 있게 비주얼라이즈한 80년대 샤넬 비주얼팀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어요. 보통 셀럽이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향수 보틀을 명확히 보여주는, (그래서 매우 boring한) 최근의 향수 비주얼 문법과도 정.반.대.죠. 저에게 중요한 건 제가 이 향을 실제로 맡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향을 맡지 않았는데도 이미지를 통해 먼저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그 이미지가 단순히 ‘강한 남자’ 혹은 ‘섹시한 남자’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신화 속 인물과 그가 가진 힘의 조건, 이를 바탕으로 이 향수가 대충 어떤 노트를 품고 있겠구나까지 생각하게 했죠. 안테우스에게 ‘강함’은 단순히 근육이나 남성적인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 뿌리내리고 있을 때 비로소 유지되는 힘이었다는 맥락에서 분명 이 향은 얼씨(earthy)한 노트가 포함되어 있을 테고요. (실제 랍다넘, 패출리 등이 핵심 베이스에요)
공교롭게 또 샤넬이지만 장 폴 구드(Jean Paul Goude)가 제작한 1990년의 에고이스트(Égoïste) 광고 영상(파로마!의 레퍼런스였을 것이 분명한!), 1991년 바네사 파라디가 출연한 코코(COCO) 광고 영상(보러가기), 2019년 샹스(CHANCE) 광고 영상(보러가기) 등도 언급하고 싶어요. 세 가지 향수 모두 딱히 제 스타일의 향은 아닌데, 당대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향수 광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캠페인 영상임이 분명해요. 제가 광고 전문가는 아니지만 엄청난 규모와 섬세한 메타포 등은 컨텐츠를 매달 제작하는 저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서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향수 비주얼을 볼 때마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존 버거는 광고 이미지가 현재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미래를 이야기한다고 설명해요. ‘이것을 가지면 당신은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제품을 통해 내가 될 수 있는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죠. 저는 향수 비주얼을 보거나 제가 직접 만들 때 그 반대의 가능성도 많이 신경 쓰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편이에요. 물론 향수에는 판타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이미지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향수만큼은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어요. 현재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이 향수를 쓰면 훗날 당신은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미래의 나(어쩌면 허상일지 모를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신, 이미지를 보고 잠시 멈춰서 ‘지금’의 나 혹은 ‘지금’의 시대상을 떠올리고, 향에서 시작해 깊은 사유로 침잠하는 시간을 끌어내 주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시간에 충실히 머물게 하는 거죠.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이 현재에서 시작해 미래로 향하는 ‘미래완료’ 시제에 가깝다면, 향수는 분명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에 머무는 ‘현재완료’ 시제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연인 또는 엘르 뷰티 디렉터로서,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향일까요? (제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떤 자연물이나 상황 또는 풍경 등 모두 좋아요)
“어떤 향을 제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러면 제가 늘 하는 답이 “파리 할머니 같은 향이요”라고 웃으며 답해요. 우스갯소리 같고 상대방은 대부분 “파우더리한 향 좋아하시나봐요?”라고 반응하지만 저한테는 사실 저 답변 안에 엄청나게 많은 이미지와 질감들을 담고 있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 파리, 그 중에서도 리브 고슈의 멋진 건물 앞에서 마주치는 할머니들의 멋진 백발에서 느껴지는 거칠지만 자연스러운 질감, 소매 끝이 살짝 헤진 오래 입은 듯한 스웨터, 대충 둘둘 둘렀는데 멋스럽게 드레이핑 되는 실크 스카프, 발목까지 내려오는 푸근한 코트, 할머니 곁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강아지 한 마리, 할머니 집에 따라 올라가면 있을 것만 같은 낡은 가구와 케케묵은 책, 먼지 쌓인 테이블 위에 대충 놓인 날짜 지난 신문과 그 옆 오늘 아침에 산 듯한 바이올렛 꽃 한 다발… 이런 이미지들을 총체적으로 표현해주는 향을 좋아해요! 지극히 개인적인 심상들이라 제가 좋아하는 특정 향수를 언급해도 ‘이게 왜 파리 할머니 향…?’이라고 의아해하실지 몰라요.
좀더 디테일하게 적자면,,, 나무나 흙, 잿빛의 함석지붕, 도시의 먼지, 울 같은 패브릭, 조금은 낡았지만 건조한 가죽이나 종이 같은 ‘물성’이 느껴지는 향이 저다운 향 같아요. 강하게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다가오고, 시간이 지난 뒤에 또 다른 면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 완벽하게 매끈한 향보다는 약간의 거칠음이나 여백이 있고, 그래서 오히려 사람마다 다른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향이 제 정체성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살면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생애 첫 향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어떤 장소거나 어떤 사람이거나요.
어릴 때 아빠 차에서 나던 향. 그 당시 아빠가 차에 특별한 방향제를 두거나 하지는 않으셨고, (예민하셨던 분이라 오히려 그런 인공적인 방향제를 싫어하셨어요) 제 기억으로는 매일 아침 바르고 나온 아빠의 스킨로션 향이 운전석 부근에 자연스레 배서 나는 향이었던 것 같아요. TMI이긴 하지만, 지금 제가 모는 차는 아빠가 한 10년 정도 몰던 차에요. 지금 제 차에서도 어릴 때 아빠 차에서 느꼈던 그 향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저런 방향 제품을 차 안에 놓아봤는데 희한하게 아빠 향은 쉽게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요즘은 어떤 향수를 쓰세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알타(Alta) 컬렉션 중 모먼트 애프터(Moment After)랑 메종 프란시스 커정(Maison Francis Kudkjin)에서 새로 출시한 ‘우드 벨벳 무드 엑스트레 드 퍼퓸(Oud Velvet Mood Extrait de parfum), 요즘 이 두 향수에 완전 꽂혔어요.
보테가 베네타 모먼트 애프터는, 농밀한 가죽 향에 달큰한 바닐라가 섞여 있는데, 바닐라가 지나치게 달거나 가죽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아요. 제가 최근에 보테가 베네타에서 지갑을 구입했는데 그래서 더 가죽 향에 끌렸는지도 모르겠어요. 매일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위빙된 가죽 지갑을 만지다보니 ‘레더’라는 물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이 향을 맡으니까 더 자연스럽게 좋아졌을지도 모르겠고요.
커정의 ‘오우드 벨벳 무드 엑스트레 드 퍼퓸’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의 광활한 사막이 벨벳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향으로 표현했다고 해요. 복숭아의 벨벳 같은 피부, 부드러운 스웨이드, 오드의 깊이를 통해 그 촉각적인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했다고 설명하는데, 저는 이 향을 뿌리면 정말 그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느낌이 들어요. 무수히 많은 모래알이 모여 만들어낸 굴곡이 하나의 거대한 벨벳의 부드러운 표면처럼 보이는 거죠.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peachy한 뉘앙스가 저에게는 묘하게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져요. 뜨겁고 건조한 풍경 속에 아주 작은 생명과 부드러움이 존재하는 것처럼요.
제가 이 두 향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특정 ‘노트’를 써서라기 보다는 저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물성’을 전달하거나 특정 ‘장면’을 선사해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향수가 꼭 향으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내가 최근에 보고, 만지고, 경험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향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고를 때 ‘좋아하는 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지금 내가 무엇에 끌리고 있는지를 향을 통해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향수를 고를 때 가장 고려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듯한 향은 우선 배제합니다.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울 건 없다지만, 그럼에도 오묘하게 새롭게 느껴지는 향수들은 계속 출시되고 있거든요. 또한 처음부터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향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향에 더 끌리는 편입니다. 그리고 계속 ‘물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게 되는데, 그 향을 맡았을 때 어떤 표면이나 온도, 질감이 떠오르는지를 가만히 느껴봐요. 눈앞에 가죽이 그려지는 향, 비 온 뒤 젖은 흙에서 공기 중으로 퍼지는 향, 달큰한 열매와 야생의 이끼가 어우러진 서늘한 숲 속으로 인도하는 향, 거친 돌처럼 바삭거리는 거침이 느껴지는 향 같은 것들요. 결국 향을 고르는 일도 저에게는 하나의 이미지나 장면을 고르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썼던 모든 향수들 중 좋아하는 것들을 말씀해주세요.
위에서 언급한 보테가 베네타 모먼트 애프터
메종 프란시스 커정 오우드 벨벳 무드 엑스트레 드 퍼퓸 외에도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Portrait of a Lady)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컴 위드 미(Come with me)
디올(DIOR) 우드 이스파앙 에스프리 드 퍼퓸(Oud Ispahan)
아무아쥬(AMOUAGE) 에센스 컬렉션, 리메인(Remain)
아스티에 드 빌라트(Astier de Villatte) 레 뉘(LES NUITS)
에르메스(HERMES) 바레니아 인텐스(Barénia - Eau de Parfum Intense)
에르메스(HERMES) 떼르 데르메스(Terre d'Hermès)
셀린(CELINE) 오 드 캘리포니아(Eau de Californie)
딥티크(Diptyque) 34번가 생제르망(34 Boulevard Saint Germain)
향수가 아닌, 에디터님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이나 일상의 냄새’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갓 지은 밥 냄새, 장기출장 후 집에 와서 남편이 끓여 놓은 김치찌개 데울 때 풍기는 냄새, 오래된 인형에서 옅게 풍겨오는,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숙희의 침 냄새. 숙희 침 냄새는 안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특정한 향(또는 향수)와 이어지는 영화나 음악, 문학이나 어떤 이름들이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요?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를 뿌리면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다양한 꽃 그림들이 떠 올라요. 강렬한 색채와 렌즈를 한껏 땅긴 듯 확대해 트리밍된 꽃잎이 엄청 도발적이면서 에로틱하잖아요. 사실 제가 플로럴 노트, 특히 장미 향을 그리 선호하지 않아요. 근데 포오레를 처음 맡았을 때 어떻게 내가 장미 향을 좋아할 수 있지? 기존에 맡았던 장미 향이랑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지?라는 질문이 생기면서 급속히 빠져들었고, 지금까지 제 페이보릿 향수 중 하나로 손꼽혀요. 원초적인 여성성, 꽃에서 비롯된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생명력이 이토록 생생하게 향으로 전해질 수 있을까 싶은 제품인데, 그래서 더더욱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들이 떠 오르는 것 같습니다.

정윤지
현재 엘르 코리아의 뷰티 디렉터이다. 엘르 코리아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당대의 스타들 그리고 최고의 뷰티 및 퍼퓸 브랜드들과 함께 오늘날을 정의하는 화보, 표지 등을 도맡고 있다.
@younji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