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SM-Firmenich에서 아시아 지역의 파인 프래그런스 개발을 총괄하며, 조향사와 브랜드 사이를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향을 매개로 이 두 언어를 조율할 때, 당신은 중립적인 '중재자(mediator)'에 더 가깝다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방향을 제시하는 '해석자(interpreter)'에 더 가깝다고 느끼시나요?
솔직히 말해, 어느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중재자와 통역사 두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것은 통역자, 즉 조향사들이 창의적인 과정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특히 아시아와 같이 문화적차이가 뚜렷할 때 더욱 중요해집니다. 저의 역할은 브랜드의 DNA - 브랜드가 가진 가치, 비전, 그리고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감정 - 을 번역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지역적 취향도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번역된 내용은 조향사와의 대화로 발전해 나가며, 원료, 어코드, 구조에 대한 논의를 통해 마케팅 콘셉트를 향으로 구현하게 됩니다.언어와 이미지에서 분자로,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감정을 표현력 있는,느낄 수 있는 향으로 번역해 주는 것이죠. 창의성과 전략, 기술과 감성이라는 두 언어가 어우러지게 춤을 추도록 안무를 짜는 안무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때로는 브랜드에서 제공한 단순한 정보를 넘어 그 본질을 추출하고, 조향사가 그에 진정으로 공명할 수 있도록 디렉션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조정자로서 두 세계를 잇습니다. 조향사가 브랜드의 감정적 의도와 창의적 방향을 이해하도록 돕고, 브랜드가 향이 어떻게 그들의 콘셉트와 맞닿아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고양시키는지를 알 수 있게 도와줍니다. 결국 이는 진정한 “공동-창작”입니다. 향은 브랜드 정체성의 자연스러운 확장이자 조향사의 창의성이 온전히 발휘되는 매체이죠. 궁극적으로 제 역할은 브랜드와 조향사가 함께 만드는 이 공유된 서사를 다듬는 것입니다. 브랜드의 진정성을 담으면서도 조향사의 목소리가 빛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브랜드의 철학이나 예술적 언어를 후각적으로 풀어낼 때, 가장 먼저 포착하는 단서는 무엇인가요? 어떤 감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시나요?
이는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개요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브랜드의 타겟 소비층, 브랜드가 의도하는 컨셉과 감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 후에는 향의 질감이나 캐릭터가 중요해집니다. 특정 원료를 부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원료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가벼운지, 대담한지, 친밀한지, 관능적인지 해석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시각적, 청각적인 요소들이 저의 관심을 많이 끄는 편입니다. 자연경관, 무드 보드, 팔레트의 색, 또 음악 같은 요소들은 저에게 추상적인 감정을 보다 향으로 구체화하도록 돕고, 창의적 방향을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끌어 줍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작업은 조향사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그것을 소비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두 방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다듬어 오셨는지, 당신만의 방식을 들려주세요.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각 조향사의 창작 과정을 존중하고 적응하는 법입니다. 조향사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어떤 이들은 간섭 없는 자유로운 탐구가 필요하고, 어떤 이들은 정기적인 피드백과 압력에서 힘을 얻습니다. 저의 역할은 그들의 창의성이 빛날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하면서, 항상 브랜드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끊임없는 “대화”로 이어집니다. 아이디어, 원료, 구조, 퍼포먼스, 감정에 대한 대화죠. 결국 우리가 향을 구현할 때, 브랜드가 제공해 준 개요와 공명하며, 브랜드의 정체성과 완전히 맞닿아야 합니다. 조향사의 예술적 자유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때 진정한 창의적 성공을 볼 수 있습니다.

향을 가시적인 형태로 완성하는 작업은 종종 ‘재현’보다는, 매우 추상적인 일처럼 느껴집니다.향을 조형할 때,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나요?
개요를 통해 전체적인 무드나 감정이 정의되면, 일단 우리는 조향사들을 존중하고 믿고 기다립니다. 그들은 원료, 어코드, 그리고 향의 구조를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해 브랜드의 의도와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감정을 모두 다르게 경험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향을 후각으로 암시하는 은유(metaphor)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만큼 열려 있는 '그 무언가'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겠네요.
아시아 시장을 오랜 시간 관찰해오셨습니다. 이 지역만의 고유한 특징이나, 앞으로 주목하고 계신 흐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무엇보다도, 저는 아시아의 향 문화 지닌 풍부함에 끊임없이 놀라고 있습니다. 깊은 전통과 유산, 특별한 지역 원료, 그리고 향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 말입니다. 제가 아시아의 문화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곳에서 향과 맺는 관계는 서구의 방식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시아의 정서는 단순한 매혹적임을 넘어서, 더 세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향과의 관계는 종종 더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며, 더 조심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고 있죠. 이것은 또 아시아의 소비자들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구매하기 전에 향이나 브랜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광고나 매혹적인 이미지를 넘어 바라보죠. 아시아는 향이 전달되는 방식과 소비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더 많은 층위가 존재합니다. 동시에, 이곳의 향 소비자들은 젊고 개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gender-free, 실험적인 구조, 전통적 범주에서 벗어난 향수들에 열려 있습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지역적 서사’와 조향사들의 조화를 이루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주로 스토리텔링이나 토착 원료를 이용하죠.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창의성과 정체성에 점점 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지에서의 공감을 형성할 뿐 아니라, 지역 너머에서도 주목받는 향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오늘날 향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가장 큰 변화가 개인적인 필요로 옮겨갔다고 생각합니다. “self-expression 자기표현”, 이전보다 더 깊고, 더 개인적인 목적으로요. 오늘날의 향은 타인의 관심을 끄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위로받기 위해서든, 힘을 얻기 위해서든, 행복하기 위해서든, 평온을 느끼기 위해서든 향수가 우리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형성하는 힘은 정말 놀랍습니다. 신중하게 고른 향은 우리의 기분을 북돋을 수도 있고, 평온과 집중을 도와줄 수도 있으며,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무형의(intangible) 향이 우리가 하루를, 혹은 긴 밤을 지내며 나 자신을 느끼고 드러내는 방식에 이렇게나 분명하게 보이는(tangible)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향수는 정서적 지지의 원천이자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향수는 단순한 타인의 관심을 위한 피상적인 욕망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표현, 진심으로 이해받고 느껴지는 것에 관한 것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삶에서 특별한 순간마다 기억에 남은 향이 있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후각적 기억을 지니고 다니게 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은 향수 앨범과도 같은 것이죠. 이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제 경우에는 어머니가 저희에게 발라주시던 Fidji 보디로션이나, 제가 가끔 그리울 때 여전히 뿌리는 어머니의 향수입니다. 향을 맡았을 때 기억의 힘은 눈으로 어머님의 사진을 보는 것보다 강력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제가 인생의 여정을 거치며 만난 사람들의 향입니다. 후각적일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죠. 또한 아기 피부의 향처럼, 아직 완벽하게 재현된 적 없는아마 재현할 수 없는 향들도 있습니다. 제가 여행을 하며 기억에 새긴 후각적 자취들도 있죠. 제가 태어난 브르타뉴의 짭짤한 바닷바람, 베이징 라마사원의 침향, 인도의 활짝 핀 자스민 향, 마라케시 시장에서의 가죽들과 향신료들, 바라나시 겐지스강 신부들이 기도를 드리며 피우는 향… 이 목록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최근에는 Geonol이라는 원료에 끌리고 있습니다. 흙내음, 이끼, 캠퍼, 패출리의 뉘앙스를 지닌 이 원료는 자연과의 강한 연결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마도 제가 현재 상하이에 살고 있고, 어린 시절 야생 숲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후각적 아이디어를 찾고, 정확히 말하자면 맡으며, 그것을 조향사들과 함께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꽤나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이 시점에서 저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과거의 향들 YSL(입생로랑)의 NU(누), ISSEY MIYAKE(이세이 미야케)의 Le feu d’Issey(르푸디세이)처럼 사라졌거나 잊힌 향수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여전히 즐겨 쓰고 있고요.

*본 인터뷰는 향 디스트리뷰터, '청옥(Ceong ok)'의 도움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루크 베리에 Luc Berriet
향료사 dsm-firmenisch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브랜드와 조향사의 사이를 조율하며 다양한 향수를 창조했다. @lucberri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