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PERFUME
FIELD NOTES

CINEMA, PERFUME

향수 브랜드는 왜 영화감독의 시선을 빌리는가.

영화감독이 향수 광고를 연출하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수십 초에서 몇 분에 이르는 짧은 영상에 유명 배우와 영화감독이 등장하고, 때로는 한 편의 단편영화에 가까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14년의 간격을 두고 두 차례 Bleu de Chanel의 광고를 연출했습니다. 구찌는 데이비드 린치와 크리스 커닝햄이라는 독특한 시각적 세계를 가진 감독들에게 향수 광고를 맡겼고, 장 폴 구드는 오랫동안 샤넬 Chance의 이미지를 만들어왔습니다. 조 라이트와 Coco Mademoiselle의 인연은 2007년부터 이어져 2026년의 새로운 광고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소피아 코폴라는 Miss Dior Chérie와 Marc Jacobs Daisy에서 자신의 영화적 감각을 서로 다르게 활용했습니다. Chanel N°5는 리들리 스콧부터 뤽 베송, 바즈 루어만, 장피에르 주네, 루카 구아다니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감독들을 초대하며 향수의 이미지를 재해석해왔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단순히 유명 감독의 이름을 빌리는 일일까요? 아니면 감독의 고유한 시각적 언어를 통해 향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일까요?

BLEU DE CHANEL — THE RETURN OF SCORSESE

Martin Scorsese / 2010, 2024

2010년, 샤넬은 새로운 남성 향수 블루드샤넬(Bleu de Chanel)의 광고를 마틴 스코세이지(영화 <택시 드라이버>,<좋은 친구들>, <순수의 시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에게 맡겼습니다.

가스파르 울리엘이 출연한 영상은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는 한 남자와 그가 떠올리는 과거의 장면들을 교차시키며 진행됩니다. 롤링 스톤스의 〈She Said Yeah〉가 흐르고,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 속에서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신과 스스로 원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을 내립니다. 광고에는 스코세이지의 영화에서 익숙한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도시의 공간, 음악과 편집이 만들어내는 속도감, 그리고 개인의 욕망과 외부의 시선 사이에 놓인 인물의 갈등입니다.

14년 뒤 샤넬은 같은 감독을 다시 선택했습니다. 이번에는 티모시 샬라메가 주인공입니다. 2024년 광고에서도 주인공은 배우이고,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 자신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흑백과 컬러를 교차시키는 화면, 허비 행콕의 〈Rockit〉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첫 번째 광고와는 또 다른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두 작품은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시대도, 배우도, 영상의 색채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삶을 향한다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향수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변화시키는 것. 샤넬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스코세이지를 다시 선택한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GUCCI — THE BEAUTY OF STRANGENESS

David Lynch / 2007 · Chris Cunningham / 2009

2007년 구찌는 첫 텔레비전 향수 광고를 위해 데이비드 린치(영화 <트윈 픽스>, <로스트 하이웨이>,<멀홀랜드 드라이브> 등)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는 린치가 가진 환상적이고 독특한 시각적 감각을 구찌의 광고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세 명의 모델이 등장하는 구찌바이구찌(Gucci by Gucci)의 광고에는 뚜렷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블론디의 〈Heart of Glass〉가 흐르는 가운데 인물들은 무언가에 취한 듯 움직이고, 인물을 따라 몽환적인 빛과 그림자는 일상의 공간을 현실과 꿈 사이 경계에 던집니다. 린치의 영화에서 때로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내던 낯선 감각은 이 광고에서도 비슷하게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한층 관능적으로 변모합니다.

2년 뒤 구찌가 선택한 감독은 크리스 커닝햄(단편 영화 <러버 조니> 및 비요크, 에이펙스 트윈스 등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었습니다. 에이펙스 트윈과 비요크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기괴하고 실험적인 이미지를 선보여온 커닝햄 역시 플로라바이구찌(Flora by Gucci)에서 자신이 선보이던 이미지를 확장해 보여줍니다. 꽃이 가득한 들판에 선 모델 애비 리 커쇼. 바람에 흔들리는 옷과 머리카락, 점차 거세지는 꽃잎의 움직임은 어느 순간 현실적인 풍경을 벗어나 환상적인 장면으로 변합니다.
도나 서머의 〈I Feel Love〉를 재해석한 음악은 그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꽃의 에너지에 한껏 취한 모델은 마치 '장풍'을 쏘듯 손을 뻗습니다. 그녀가 손을 뻗자 꽃들이 쓰러지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두 감독 모두 익숙한 아름다움을 조금은 낯설게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찌는 이들이 가진 실험적인 감각을 패션과 향수의 세계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활용했습니다. 감독의 미학과 장기를 십분 발휘하도록 장을 마련해주면서 동시에 브랜드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더 새롭게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LA NUIT DE L’HOMME — THE DARK SIDE OF SEDUCTION

Gaspar Noé / 2009 · Darren Aronofsky / 2011

2009년 입생로랑은 라뉘드롬므(La Nuit de L’Homme)의 광고를 가스파 노에(영화 <돌이킬 수 없는>의 감독)에게 맡겼습니다. 뱅상 카셀이 등장한 이 영상은 어두운 공간과 강렬한 시선을 통해 향수가 지닌 관능적인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2년 뒤 같은 향수의 광고를 연출한 감독은 대런 애로노프스키(영화 <레퀴엠>, <블랙스완>, <더레슬러> 등)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애로노프스키를 제안한 사람은 모델인 뱅상 카셀 자신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영화 《블랙 스완》에서 함께 작업한 사이였고, 광고 음악 역시 애로노프스키의 오랜 협업자 클린트 맨셀이 맡았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에서 영감을 받은 이 광고는 파리의 밤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유혹을 따라갑니다. 인물과 공간은 달라지지만, 밤과 욕망, 심리적인 긴장감이라는 향수의 이미지는 유지됩니다. 같은 향수, 같은 배우, 서로 다른 두 감독. La Nuit de L’Homme은 브랜드가 이미 만들어진 영화적 관계를 활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감독의 언어로 하나의 향수를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SOFIA COPPOLA - ONE DIRECTOR, TWO WORLDS

Miss Dior Chérie / 2008 · Marc Jacobs Daisy Dream / 2014

소피아 코폴라(영화 <처녀자살소동>,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마리앙투와네트> 등)의 영화에서는 종종 특별한 사건보다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가 오래 기억됩니다. 햇빛이 들어오는 방과 소녀들의 옷, 특정한 시절의 음악, 별다른 목적 없이 흘러가는 오후 같은 것들입니다.

2008년 미스디올쉐리(Miss Dior Chérie)에서 코폴라는 파리를 젊은 여성의 낭만적인 하루로 표현했습니다. 브리지트 바르도의 〈Moi Je Joue〉가 흐르고, 한껏 들뜬 모델은 파리의 거리와 카페, 상점들을 지나 풍선을 들고 하늘로 떠오릅니다. 파스텔 컬러와 달콤한 디저트, 장난스러운 움직임은 코폴라의 영화적 감각을 디올의 로맨틱한 이미지로 확장합니다.

2014년 Marc Jacobs Daisy Dream에서 코폴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선택했습니다. 파리의 거리 대신 여름의 들판이 등장합니다. 모델 안토니아 베셀로는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카메라는 특별한 목적 없이 흘러가는 오후의 장면들을 따라갑니다. 이 영상은 코폴라의 초기작 <처녀 자살 소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감독 역시 두 작품 사이의 시각적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코폴라가 향수 광고를 만드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 방식입니다. 그는 향수 광고가 이야기보다는 분위기와 인상, 인물의 개성을 다루기 때문에 즐겁다고 설명했습니다. 디올에서는 파리의 낭만적인 판타지를, 마크 제이콥스에서는 개인적인 기억처럼 느껴지는 여름의 오후를 만들었습니다. 두 광고 모두 소피아 코폴라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은 서로 다른 브랜드의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감독의 미학이 언제나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CHANEL N°5 - CINEMA AS AN ICON

Ridley Scott · Luc Besson · Baz Luhrmann · Jean-Pierre Jeunet · Luca Guadagnino

샤넬 넘버5(N°5)의 접근은 조금 다릅니다.

오랫동안 하나의 감독과 작업하며 특정한 스타일을 유지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대의 감독을 초대해 하나의 향수를 새롭게 해석해왔기 때문입니다. 리들리 스콧(영화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 <글레디에이터> 등) 은 1970년대 말부터 N°5의 광고에 영화적인 이미지를 도입했습니다. 1998년 뤽 베송(영화 <레옹>, <제5원소> 등) 은 빨간 망토를 입은 에스텔라 워렌이 늑대와 마주치는 동화 같은 영상을 만들었고, 2004년 바즈 루어만(영화 <로미오와줄리엣>, <물랑루즈>, <엘비스> 등)은 니콜 키드먼과 함께 거대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단박에 물랑루즈가 떠오르는 멜로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2009년 장피에르 주네(영화 <델리카트슨>, <아멜리에> 등)는 오드리 토투와 함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낭만적인 만남을 그렸습니다. 주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샤넬이 후원한 개인적인 단편영화에 가깝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루카 구아다니노(영화 <아이엠러브>, <콜미바이유어네임>,<퀴어> 등)는 캘리포니아의 도로와 바다, 햇빛으로 가득한 풍경을 선택했습니다. 다프트 펑크의 <Veridis Quo>가 흐르는 가운데,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가 등장하는 이 광고는 엇갈린 만남을 따라가며 인물들을 둘러싼 빛과 공간을 구아다니노 특유의 탐미적인 시선으로 포착합니다.

각 광고는 서로 다른 감독의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N°5는 그 중심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감독의 스타일을 향수에 고정하는 대신, 향수가 가진 상징성을 통해 시대마다 새로운 영화적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COCO MADEMOISELLE - A LONG RELATIONSHIP

Joe Wright / 2007–2026

샤넬과 조 라이트(영화 <오만과 편견>,<어톤먼트>,<다키스트아워>등)의 관계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2007년 샤넬은 Coco Mademoiselle의 새로운 광고를 위해 영화 <오만과 편견>의 감독 조 라이트와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를 기용했습니다. 이후 2011년과 2014년에도 두 사람은 함께 작업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파리를 달리거나, 화려한 파티에서 누군가를 매혹시킨 뒤 유유히 사라지는 여성의 모습으로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2026년 샤넬은 새로운 코코 마드모아젤 크러쉬 압솔뤼(Coco Mademoiselle Crush Absolu) 광고를 위해 다시 조 라이트를 선택했습니다. 이번에는 키이라 나이틀리 대신 싱어송라이터 그레이시 에이브럼스가 등장합니다.

화려한 파티를 위해 꾸며진 모습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파리의 밤거리로 향합니다. 가발을 벗고 화장을 지운 뒤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에 들어서자, Candi Staton의 〈Young Hearts Run Free〉를 리믹스한 음악이 시작되고 공간은 순식간에 춤의 무대로 바뀝니다. 조 라이트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음악에 따른 유려한 리듬과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향수 광고는 결국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감독의 이름과 배우의 얼굴, 정교한 영상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협업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이상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어떤 향수는 오랫동안 같은 감독의 시선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어떤 향수는 시대마다 새로운 감독을 초대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또 하나의 감독이 전혀 다른 브랜드에서 자신의 미학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를 해석하고, 브랜드는 감독의 고유한 시각적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향기는 그대로 남아 있어도, 우리가 그 향수를 떠올릴 때 기억하는 인물과 장소, 음악과 색채는 시대에 따라 또 달라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향기를 위해 누군가는 하나의 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통해, 향수를 맡기 전부터 이미 어떤 향기를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문득 한국의 당대 영화감독에게 향수 광고를 의뢰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전 박찬욱 감독을 떠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감독이 떠오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