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rored
STORIES - PORTRAITS

JANG WOO CHUL

Mirrored

장우철 JANG WOO CHUL (사진작가) -

후각은 기억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과거요. 언젠가 내게 있었던 감각으로서 뭔가 환기시키는 측면에서 코를 쓰고 싶어집니다.

글과 사진을 다루는 작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시잖아요. ‘다루다’라는 말은 긴 생각 끝에 고르신 거죠? 
그럴 수만 있다면 판단하거나 결정짓지 않는 쪽으로 하고 싶어요. 뭔가 생각하다 보면 늘 마지막엔 유예하는, 유보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고요. 말은 신나서 즐겁게 하지만 글은 고요하게 쓰고 싶은, 그런 모순을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있어요. ‘다루다’라는 말은 생각 끝에 얻은 말이기는 한데, 그냥 쓰다 보니 쓰고 있는 말이기도 해요. 둘 다 맞아요.

작가님께 사진과 글은 각각 어떤 대상인가요?
사진 작업은 뭔가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됩니다. 그 이미지를 꼭 봐야만하겠는 당위를 생각하고 감내하면서 작업으로 이어지면 작품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글은 뭔가 쓰고 싶다는 열망과는 거리를 둬요.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으니까요. 써야 한다는 강박, 억압에 가까울거예요. 그래서 더 파고들게 되는 면도 있지요. 제가 다루는 사진과 글은 서로 친밀하지도 보완하지도 않아요. 그냥 옆에 있어요.

작가님의 작업실이자 갤러리인 미러드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집에서 걸어서 2 분인 곳에 어느날 ‘임대’ 표시가 붙어있는 걸 보고 충동적으로 계약한 곳이고, 이제 4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생각처럼 부지런하게 운영하지는 못 하고 있어요. 그래도 날마다 거기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합니다.

그 곳을 어떤 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 미러드를 열 때, 테이블 놓는 자리를 정하거나 액자를 거는 방식을 고려하면서 ‘성당’을 떠올리며 한 일들이 있어요. 바티칸약국(Farmacia Vaticana)에서 만든 향수 오로(ORO) 를 뿌리면서 저혼자 웃었고요. 지금은 그 향수 다 쓰고 없네요.

요즘 미러드에 가면 어떤 향이 나나요?
향을 쓰고 있진 않아요. 요즘 차를 많이 끓여서 그런지, 엊그제 친구가 들어오면서 보리차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결명자차랑 보리차랑 자주 끓입니다.

작가님 작품에는 꽃이 자주 등장하잖아요. 향기로부터 선택되는 꽃도 있을까요?
장미가 한창일 때가 생각나네요. 매년 5 월이면 장미를 가져다 작업을 해요. 미러드에 장미 묘목이 잔뜩 들어와 있고 그러면 내내 장미향에 휩싸이게 되지요. 나중에 작품을 고르다가, 이 이미지에서 내가 맡았던 향이 나나? 이런 질문을 해보기도 했네요.

작가님에게 후각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후각은 기억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과거요. 언젠가 내게 있었던 감각으로서 뭔가 환기시키는 측면에서 코를 쓰고 싶어집니다.

처음 맡은 냄새, 생애 첫 향에 대한 기억이 있으세요? 어떤 장소거나 어떤 사람이거나.... 
어렸을 때 살던 집 앞으로 도랑이 흘렀어요. 많이 흐를 땐 어른 가슴께까지 오니까 제법 큰 도랑이었던 거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그 도랑 근처에서 나던 냄새가 기억나요. 빗물, 흙탕물, 풀잎들, 민물고기들, 젖은 옷... 그런 이미지들이 뒤섞여 나는 냄새 같아요.

처음 뿌린 향수는 어떤 거였어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의 아쿠아디지오(ACQUA DI GIO)와 겐조(KENZO)의 로파겐조(L'EAU PAR KENZO) 두 병이 같이 놓여있던 선반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물’이 들어가는 이름이네요. 아쿠아디지오는 여름에, 로파겐조는 겨울이나 봄에 뿌렸던 기억도 스쳐가네요.

요즘은 향수 뭐 쓰세요?
유월에 앤트워프에 갔다가 드리스반노튼에서 향수를 샀는데, 아직 열지 않았어요. 생각해보니 요즘 저는 어떤 향이 강하게 나는 상황 자체를 즐기지 않는 것 같아요. 내게서 나는 향도, 누군가에게서 맡고 싶은 향도 없는 상태라는 게 뭔가 좀 문제가 있는 것도 같은데... 그런 이유에선지 자연스럽게 섞이는 듯한 리튼온워터(WRITTEN ON WATER)의 ONDINE(옹딘)을 자주 뿌립니다.

새로운 향수를 고르게 될 때 가장 고려하시는 건 뭔가요?
아무래도 계절인 것 같아요. 한동안 그 냄새로 살게 될 거라 예감하게 되니까요. 올가을에는 뭔가 흙냄새 같은 걸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죠.

지금까지 썼던 향수 중 좋아하는 것들을 말씀해주세요.
생각해보니 저는 똑같은 향수를 반복해서 쓴 일이 없네요. 그땐 그걸 좋아했지, 하는 식의 기억만 있는 셈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바티칸약국의 ORO 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한동안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의 윈로즈(UNE ROSE)를 썼는데, 이름이 바뀐 뒤로는 왠지 쓰지 않게 되었고. 아쿠아 플로(Aqua Flor)의 프레스큐라(FRESCURA)를 좋아했던 기억도 납니다. 방금 딴 토마토 꼭지에서 나는 냄새라면서 좋아했어요.

향수가 아닌,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이나 일상의 냄새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울에서 살다가 가끔 어머니가 계시는 논산으로 갈 때, 논산역에 내리면 딱 맡아지는 냄새가 있어요. 고향의 냄새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그 냄새, 그리고 고등학교 냄새, 도끼다시로 마감한 건물 복도나 계단에서 나는 냄새, 유월에 국도변에서 제초 작업할 때 나는 냄새, 마츠모토에 있는 카페 마루모에 들어설 때 나는 냄새,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내리면 맡아지는 냄새... 그런 게 생각나네요.

특정한 향과 이어지는 영화나 음악이나 어떤 이름도 있으시겠죠?
프레데릭 말의 UNE ROSE 를 한참 쓰던 때에, 쇼팽을 참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쇼팽의 발라드 NO.1 을 음악으로 쓴 하뉴 유즈루의 쇼트 프로그램과 이어지고요. 쇼팽은 자신의 장례식에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해달라고 했다는데, 그 장소가 파리의 마들렌 성당이고, 그 성당을 나와 장 폴 에방에서 사먹던 캐러멜...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게 있죠.

만약 작가님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 향으로 만든다면, 어떤 것을 어떤 향으로 만들고 싶은가요?
최근에 다이빙대회에 가서 선수들을 촬영했어요. 아직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뭔가 향이 개입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물냄새와 흙냄새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장면 같은 게 떠오릅니다.

 

 

 

 

장우철
2002 년부터 15 년 동안 <GQ> 에디터로 잡지를 만들었다. 이후 사진을 찍어 사진전을 열고, 글을 써서 책을 내기도 했다. 사진과 글을 다루는 작가인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맡아 활동 중이다.
@jangwoochul